[CLASSI그널]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문자가 현대와 만났을 때, 세계문자페스티발의 전시해석
방석현 기자 | sj@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1-08-20 15:40 수정 2021-08-31 15:48

바야흐로 21세기는 문자 홍수의 시대이다. 다양성의 시대, 우리는 문자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하는가? 문자는 동양과 서양, 내용과 형식, 구상과 추상을 연결하는 미적토대이자 원형이다. 고개 드는 문자추상의 유행과 서예전시 열기의 연계성은 중국국가미술관의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와 LA카운티 라크마미술관의 ‘한국 서예전, Beyond Line’ 그리고 예술의전당 서예관의 ‘ㄱ의 순간’등의 성공과도 맞아 떨어진다. 감각본위의 서구적 유행만을 좇던 한국미술계에 불고 있는 문자화 바람, 조만간 전통서화와 민화문자도를 비롯한 작품들이 제 가치를 찾고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호흡할 날이 멀지 않음을 시사한다.

 

문자형상의 재해석, “문자, 현대와 만나다”


1884년 갑오춘서라는 제작시기가 명확한 백수백복도 (제공 : 현대화랑)
 


작년 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독특한 전시가 열렸다. 한국 근현대 서예전 ‘미술관에 서(書)’는 서예를 미술의 범주로 인정한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전시였다. 유튜브 10만 뷰를 바로 찍었던 이 전시는 배원정 근대미술파트 학예사가 기획한 것이다. 배 학예사는 인터뷰에서 “서예가 회화나 조각 등 다른 장르의 미술에 미친 영향들을 살펴봄으로써 미술관에 ‘서(書)’를 조명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형태의 미술임을 말하고자 한다”며 “전통의 시화일률(詩畵一律)을 계승한 문자추상과 서체추상이 동서양 융합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현대화 되는지를 모색한 전시”라고 밝혔다. 추상화의 유행이 서구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미술가들이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창열, 회귀, 1987 (출처: 갤러리현대)

 

최근 국내 옥션의 하이라이트에는 작년 작고한 물방울 작가 김창열(1929~2021)의 문자작품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 현대화랑의 ‘더 패스(The Path)’ 전시에서 재조명된 바 있는 문자그림들, 서화(書畵)가 다시금 고개를 들면서 문자추상에 대한 관심이 미술시장에까지 연결된 것이다. “한자는 끝없이 울리고 펼쳐진다.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기 때문에 내게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과 동양정신이 담긴 천자문, 도덕경 등이 캔버스의 여백과 어우러진 독창적인 추상미술의 형태인 것이다. 이응노, 이정지, 남관, 김영주 등의 문자추상이 재발견되고 한국적 아방가르드(전위)의 재해석이 요구되는 측면에서 최근 유명 옥션을 통해 거래가 늘어난 서예와 문자추상에 대한 관심 또한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그 반응이 심상치 않다.



박방영 作, 전통을 재해석한 현대작가들의 문자그림 (제공 : 현대화랑)

 

이를 반영하듯 민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경주대 정병모 교수는 최근 월간민화와 함께 ‘문자도투데이’를 주제로 민화의 현대적 해석과 연계된 전시를 기획해 화제를 모았다. 현대화랑(대표 박명자)이 9월부터 개최할 《문자, 현대와 만나다》(9.14~10.26예정)를 주목해보자. 불과 100여 년 전 문자그림이라 불린 ‘민화 속 문자도’는 한자를 소재로 하여 만든 효제도(孝悌圖)가 다수를 차지했다. 유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덟 글자에 담아, “효도, 형제와 이웃 간의 우애, 충성, 신의,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을 아는 삼강오륜의 요체”를 장식과 부귀, 길상, 벽사적 성격에 맞게 제작하였다. 대개 병풍으로 제작된 문자도는 조선 말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대중적 그림이었다. 말그대로 ‘효제충신예의염치’는 그 형상성만으로도 쉽게 이해되는 반추상적 상징성을 지닌다. 현대화랑은 조선시대 민화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담은 ‘민화, 현대를 만나다’로 전문가와 대중 모두에게 신선한 호응을 받은 바 있다. 화랑측은 “조선민화의 명작들을 소개하는 ‘문자도의 어제’와 박방영·손동현·신제현의 현대미술가가 제안하는 ‘문자도의 오늘’을 함께 펼침으로써, 시·공간을 아우른 민화의 직관적 묘미와 뛰어난 조형감각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대화랑이 오랜 기간 눈여겨 수집해온 문자도의 단면들은 어느 한 지점을 콕 집어 확대해보아도 유쾌한 ‘눈맛’을 헤치지 않는다. 이름 모를 무명의 작가가 그린 고루한 솜씨로만 치부하기엔 민화문자도의 감성이 시대를 가로질러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세계문자심포지아, 메타버스 전시연계한 비대면 행사개최



제6회 세계문자심포지아의 메타버스 전시 (제공: 세계문자심포지아)

 

예술과 학술로서 세계문자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취지로 문자를 둘러싼 기술과 예술의 조화가 새롭게 기획되었다. 이름하여 ‘제6회 세계문자심포지아 신세기_문짜 NFT 작품 공모전’(기획 변홍철)이 그것이다. 문자심포지아 측은 기획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서 많은 문자가 소멸되어 문화와 함께 잊혀졌다.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가 다른 문자로 흡수되어 다양성을 잃게 되면 우리의 사고와 표현 역시 그렇게 되기 쉽다. 우리는 예술가로서 이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을 갖는다. 사단법인 세계문자연구소는 올해로 6회째 세계 문자 심포지아를 열어 예술과 학술로서 세계 문자에 대해 기록하고 기억하는 장을 열어왔다. 우리의 글이 플랫폼 / 테크놀로지 / 블록체인 등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는 않는 것과 통하지 못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이 표현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그래서 몰이해에 중독된 세상을 해독하는 신세기_문짜를 만들려 하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히어 즐겨 놀도록 하자. 이에 창제의 원리를 공유하고 문짜를 만든 창작자분들의 작품을 공개하니 대동천고개몽롱 하리라.”

 

이를 반영하여 고대문자 체계를 활용해 현대적인 이야기를 담은 ‘신세기_문짜’를 공모 받았다. 최종 16팀의 26개 작품이 선정되었으며 이 작품은 9명(황규태, 한재준, 허민재, 채병록, 이성진, 임옥상, 안상수, 문승영, 김종구)의 초대작가 작품과 함께 8월 12일 ~ 15일까지 NFT아트 형태로 메타버스 솜니움스페이스(https://somniumspace.com/parcel/3625) 스페이스55(www.space55.art)에서 전시되었다. 전시 후 출품된 작품들은 두나무 자회사인 림다256과 함께 NFT 작품으로 민팅된다. 시대인식을 반영하듯 8월14일과 15일 양일간은 음성기반 소셜 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 비대면 학술토론을 진행했다. <나의 문자 창제기>에서 '신세기_문짜 공모전' 수상자들의 이야기과 더불어 이어령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축하인사도 이어졌다.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는 “'아래아'없는 한글은 얼빠진 한글이다”를, 구연상 숙명여대교수의 “문자는 가장 뛰어난 문화재” 등 재미있는 의제들을 가지고 깊이 있는 담론을 펼쳤다. 세계문자심포지아 공식 인스타그램(@wscriptsymposia)에서는 #문자의부활 캠페인을 진행했다. 본 캠페인은 24시간 후 사라지는 인스타스토리의 특성을 살려 잊혀지는 훈민정음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당시 28자였지만, 현재는 24자만 쓰이고 있다. 문자의 역사성에 따라 잘 쓰이지 않는 자모가 사라지긴 했지만 세종대왕의 백성을 생각하는 첫 마음이 담긴 글자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된 캠페인이다. 참여자들은 훈민정음의 사라진 네 글자가 적혀있는 인스타스토리 화면을 자신의 스토리 채널에 올림으로써 본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게시된 인스타스토리는 사라진 훈민정음 네 글자의 생명을 추가로 연장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세계문자심포지아는 예술과 학술로서 문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왔다. 세계문자심포지아는 이번 행사를 통해 문자의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문자가 갖는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필자소개>
안현정 씨는 예술철학 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손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 박사박물관 학예관,  유증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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