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국악 Prologue! 영산회상 vs 산조
방석현 기자 | sj@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1-02-19 15:44 수정 2021-02-19 15:58

꼭 공연장에서 봐야 하는 공연이 있다. 연주자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빚어내는 조화, 신들린 듯 움직이는 손가락과 가만가만 움직이는 발장단, 들숨과 날숨 사이의 긴장감 같은 것이 주는 감동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레퍼토리들이 있다. 전통 기악곡 중에는 정악의 ‘영산회상’, 민속악의 ‘산조’가 그러하다. 
비대면 시대의 종말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다시 열린 공연장에서는 이 두 곡을 꼭 만나보시라 권하고 싶다. 오랜 세월 자연 음향을 추구하며 발전한 우리 전통 악기의 고졸하고도 정갈한 멋을 느끼며,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할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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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회상(사진-국립국악원)

영산회상靈山會上
우리 전통 음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구분하는데, 궁중 음악과 민간의 상류층이 향유했던 음악을 통틀어 정악正樂이라 한다. 정악은 신분의 구분 없이 두루 즐겼던 민속악에 비해 들을 기회가 흔치 않은,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다소 낯선 음악이다. 
그중 ‘영산회상’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풍류 음악으로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현악영산회상’, ‘줄풍류’, ‘거문고 회상’이라고도 불린다. 본래의 곡인 상영산과 상영산의 변주곡인 중영산, 삼현도드리를 변주한 하현도드리 등 몇 개의 곡과 그 변주곡들을 이어붙여 총 아홉 곡을 연주하는 독특한 형식의 모음곡이다. 
영산회상은 선비들의 사랑방에서 연주되었던 음악인만큼 소리를 낮추어 섬세하게 연주한다. 소리가 작은 세피리, 단소와 함께 거문고, 가야금, 대금, 해금, 장구가 연주에 쓰이며 양금이 더해지기도 한다. 세피리보다 소리가 큰 향피리를 편성하는 ‘평조회상’이나 향피리, 대금 등 관악기가 힘있게 선율을 이끌어가는 ‘관악영산회상’의 웅장한 연주와는 차이를 보인다. 평조회상은 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연주하는 곡을 이르며, 관악영산회상은 영산회상을 관악기 중심으로 편성해 연주하는 곡이다. 두 곡 모두 영산회상 아홉 곡 중 ‘하현도드리’는 빼고 연주한다. 이처럼 영산회상은 악기 편성을 달리하거나 가락에 변화를 주거나 혹은 몇 곡을 더하거나 뺀 파생곡들로 확장된다. 
또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악기가 독주곡으로 또는 몇몇 악기의 앙상블로 영산회상을 연주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악방송은 ‘줄풍류영산회상 프로젝트’를 통해 다채로운 악기 편성으로 연주한 영산회상을 시리즈 음반으로 냈다. 국악방송 누리집(www.igbf.kr)의 자료 공간에서 그 일부를 들어볼 수 있는데 「이세환 거문고」, 「이세환 거문고 황규일 대금」, 「여덟 악기의 조화」 이 세 음반의 첫 곡인 상영산 1장만 비교해 들어봐도 영산회상의 독주와 중주, 합주가 각각 어떤 매력을 지니는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상영산으로 느리게 시작하는 영산회상을 선비들이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들은 수양 음악쯤으로만 여기면 서운하다. 중영산과 세영산으로 가며 닮은 듯 다른 선율로 변주된 음악은 장단을 달리하며 점점 빨라진다. 도드리를 돌아들어 타령과 군악으로 가면 도포 자락 안에 깊숙이 묻어 두었을 선비들의 흥이 넌지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참으로 은근하고 꿋꿋하게 느껴지는 흥겨움이다.

산조散調
‘민속 음악의 백미’, ‘민속 기악의 꽃’,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선율’, ‘무궁무진한 가락의 보물창고’. 모두 산조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산조는 조선 후기에 생긴 기악 독주곡으로 굿 음악에서 비롯된 시나위에 연원을 둔다. 굿 연행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연주하던 기악 합주곡 시나위를 독주곡처럼 연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얼개를 짜고 선율을 얹어 다듬어 마침내 산조가 만들어졌다. 산조는 대개 4-6개 장단으로 구성되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판소리처럼 장단을 담당하는 고수가 있는데 북 대신 장구로 반주한다. 산조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가야금 산조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로 세상에 나온 거문고 산조는 초기에 환영받지 못하였다. 영산회상을 ‘거문고 회상’이라 부르고 연주의 시작을 거문고로 열었을 만큼 거문고가 선비들의 고매한 풍류를 상징하는 악기였기 때문이다. 거문고 산조는, ‘거문고로 감히….’로 시작했을 따가운 질타를 받았으나 시대가 변하며 중후하고 묵직한 매력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뒤이어 대금, 해금, 피리 등 선율 악기마다 산조가 만들어졌다.
산조는 정형화된 곡이 아니므로 스승에게 배운 가락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고 연주 기량을 발휘해 인정받으면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지영희류 해금 산조’ 하는 식으로 그 연주자의 이름이 붙은 산조가 탄생한다. 현대에 들어 산조를 악보로 남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산조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한 반면 산조의 즉흥성과 창작성을 잃게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산조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러 형태의 산조 합주와 산조를 소재로 한 창작곡,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 등 흥미롭고 색다른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은 명인들의 가야금 산조에서 권태로움을 맛보았다는 감상을 남긴 바 있다. 위대한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낮고 느린 소리의 나른함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억제된 정열과 오기, 기예가 그들의 가야금에 있었다고 했다. 
줄풍류의 신명, 산조 자진모리의 권태로움. 무엇이라도 더불어 새봄을 열기에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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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산조 연주(사진-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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