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이도 부진 "시류 읽지 못한 것이 원인" 중국 시장·오프라인 매장 의존도 높아 변화 필요
김민혜 기자 | minyang@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4-05-13 06:00 수정 2024-05-13 06:00

일본의 대표적 뷰티 브랜드 시세이도의 자회사 시세이도 재팬이 실적부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난달 17일부터 8일까지 20년 이상 근속한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조기 퇴직 신청을 받아 1500여명을 확정했다. 

이번에 모집한 조기퇴직자 규모는 1만여명 시세이도 재팬 전체 직원의 10%를 넘는 수준이다. 시세이도 측은 신청자에게 퇴직 시 연령에 따른 특별 가산금을 지급하고, 희망자에겐 재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구조조정의 배경엔 실적 부진이 있다. 시세이도의 2023년 매출은 전년 대비 8.8% 감소한 9730억엔, 영업이익은 전년비 39.6% 감소한 281억엔, 순이익은 전년비 36.4% 감소한 217억엔이었다.

일본의 금융 컨설팅 기업 말리부 재팬(マリブジャパン)의 대표이사 다카하시 카츠히데(高橋 克英)는 현지 경제지 프레지던트(President)를 통해 시세이도의 부진 원인을 높은 중국 시장 의존도, 느린 이커머스 전환, 브랜드 난립 등으로 분석했다.

시세이도의 중국 사업 비중은 매출의 4분의 1 이상이다. 일본 매출이 26.7%인데, 중국에서의 매출이 25.5%에 달한다. 국내 기업과 비교해보면 LG생활건강은 중국 매출이 11%,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 전체 지역의 매출이 28%이다. 이 두 기업도 사업 지역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시세이도의 중국 시장 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8월,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가 방사능 오염수를 방출하면서 시세이도의 중국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다카하시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난해엔 오염수를 계기로 불매운동이 일었지만, 앞으로도 정치적 문제 등으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카하시는 플랜B로 중국 외 지역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시세이도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 시장인 미국에서 지지부진하다는 것. 시세이도의 2023년 미주 매출은 전년 대비 20% 감소한 1103억엔이었다.

브랜드간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시세이도는 기업 인수전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고가 스킨케어 사업을 전개하는 DDG 스킨케어 홀딩스를 4억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러나 다카하시는 로라메르시에, 드렁크 엘리펀트 등의 인수 사례를 언급하며 "긍정적 결과로 이어질 지는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고급 브랜드의 경우 백화점이나 화장품 전문점에서 판매원의 상담을 거쳐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대면 판매 스타일은 시세이도가 오래 유지해온 일종의 기업 문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소비자의 구매 패턴에 변화가 생겼고,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전처럼 오프라인 영업에만 기대선 기존의 사업 규모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시니어를 포함한 모든 연령에서 온라인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 다카하시는 시세이도가 아직까지 온라인 채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세이도의 현재 이커머스 매출 비율은 전체의 10% 수준이다. 다카하시는 자사 공식몰의 인지도 및 이용자수가 낮은 것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했다. 또 최고급 브랜드인 '끌레드뽀 보떼'의 판매 채널이 난립하고 있는 것은 브랜드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쟁력 있는 소수의 브랜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다양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가 출시돼왔다. 그러나 에스티 로더, P&G, LVMH 등 해외 고급 브랜드에 대응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시장 분위기도 시세이도엔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야노경제연구소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화장품 시장은 2022년에 전년 대비 3.5%, 2023년엔 전년 대비 3.4% 성장을 기록했다. 다카하시는 "SNS 등을 통해 중저가 제품이 주목을 받으면서 관련 시장 중심으로 시장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며 "커진 일본의 화장품 시장 파이를 K-뷰티가 가져가고 있는 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시세이도의 높은 중국 시장 비중과 위기, 다브랜드 전략 등은 국내 뷰티 브랜드의 전략과 유사한 부분도 많다”면서 “시세이도의 사례를 잘 살펴보고 현 시점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9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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