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 ESG·탄소중립시대...뷰티기업도 준비 서둘러야 김기현 <슬록 대표>
김기현 기자 | mskim@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3-10-10 06:00 수정 2023-12-04 13:42

기후위기, K뷰티 대응 어떻게 할까
<1> 한국형 지속가능화장품으로 승부하자 
<2> 강해지는 환경규제, 화장품은 문제 없나
<3> 줄이고, 재생하는 것이 자원순환의 기본이다  
<4> 탄소중립의 첫걸음, 탄소발자국 계산하기
<5> 자원순환과 탄소중립 화장품 모범사례
<6> 환경으로 돈버는 시대, 기후테크는 어떤가? 

화장품시장의 폐불용자원 거래하는 플랫폼 '노스웨스트' 운영 중. 업계 최초로 화장품 탄소발자국 간편 계산 도구 개발, '광고를 알아야 크게 성공한다' 공저  

“환경규제, 화장품은 어디만큼 왔나?”
다양한 업종, 다양한 회사를 접해봤지만 대다수의 기업들은 당장 눈 앞에 규제가 다가오지 않는 한 자발적, 선제적으로 환경문제를 나서서 해결하지는 않는 경향이다. 하지만 규제가 늘 신경 쓰이고 걱정된다. 지난 7월 슬록과 뷰티누리가 공동으로 화장품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ESG중 환경분야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5%가 “국내외 환경규제 대응”이라고 응답하여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화장품 업계의 환경규제 상황은 어떠한가?

솔직히 말해서 화장품업계는 규제가 당장 눈 앞으로 다가온 업종은 아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대상업체 약 780여개 중 화장품 기업은 한 곳도 없으며, 2025년부터 시행되는 코스피 상장사 ESG공시에도 일부 대기업만 포함될 뿐이며, 금년 10월부터 전환 기간에 접어드는 탄소국경세(CBAM)의 적용 품목에도 화장품은 없다. 그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하면 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매스컴에서 많이 언급되는 ESG공시, 배출권거래제, 탄소국경세가 규제의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다가 올 환경규제들이 심상치 않다. 우선, “플라스틱 협약”이 강력하다. 국제사회는 2022년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으로 각 국에 강제적인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점과 그간 해양 쓰레기에 초점을 맞췄던 플라스틱 문제를 전주기적(full-lifecycle) 관리로 확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을 통해 ESG 및 탄소중립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플라스틱 협약과 함께 '탈플라스틱' '포스트 플라스틱' 등의 키워드들이 ESG, 탄소중립만큼이나 자주 언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제품 용기의 60% 이상을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재활용 비율은 20%가 채 안되는 화장품은 다양한 규제의 집중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EU에서 추진 중인 에코디자인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도 주목해야 한다. 제품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내구성, 재활용가능성, 수리가능성, 재활용 원재료 비율, 환경발자국 등의 요구사항을 명시한 규정으로, 당초에는 지침(directive)이었으나 2022년 3월 EU집행위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규정(regulation)으로 강화되었다. 입법 과정을 거쳐 시행될 때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초 에너지 관련 품목에서 화장품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제품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점과 무분별한 재고처리를 규제하는 내용을 포 함하고 있는 점에서 화장품 기업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SG관련 규제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공급망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은 어떠한가?  2023년 06월 EU의회의 본회의를 통과한 이 규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그들의 공급망에 속한 협력업체에 대해 환경, 인권관련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공급망의 범위는 생산, 공급, 유통, 운송, 저장 및 폐기까지 사용단계인 다운스트림을 제외한 전과정이라 할 수 있다. 대상기업은 유럽내 매출 4000만 유로 이상(한화 약 570억)및 전세계 매출 1억5000만 유로(한화 약 2140억) 초과 기업이지만 공급망에 있는 모든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상당한 수의 기업이 실사 대상이 될 것이다. 대상기업의 입장에선 실사 대응이 원활한 국가나 협력업체로 공급망을 재편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과 현재 거래중이거나 거래를 계획중인 OEM, ODM 제조업체, 원료, 포장재 제조업체 등은 반드시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을 대비하여야 한다. 

탄소국경세는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EU로 수출되는 제품에 대해 EU에서 내는 정도의 탄소 비용을 세금으로 부과하여 균형을 맞추겠다는 제도다. 2026년부터 정식으로 시행되며, 올 10월부터 2025년 말까지는 전환기간을 거친다. 전환기간 중에는 세금을 내지는 않지만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는 의무가 있어 1차 대상 업종들은 비상이다. 물론 화장품은 1차 대상품목(철강, 알루미늄, 전력, 비료, 시멘트, 수소)에 포함되지 않지만, 전환기간 중 화장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플라스틱과 유기화학물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절대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항간에서는 ESG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에너지 공급시장의 변화와 인플레이션,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축 등이 이어지면서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환경과 같은 미래의 문제를 지금 꼭 고민해야 하냐는 주장이다. ESG의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었던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 회장 또한 당초의 입장을 조금 바꾸면서 이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이 “이제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최근 겨울인 남극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았고, 아열대 식물인 선인장이 무더위로 말라죽는 모습, 그리고 매년 기후 재난으로  많은 목숨과 재산이 손실되는 사건들을 팩트로 확인하고 있다. 이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훨씬 중대한 인류가 살고 죽는 문제로서,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파리 기후협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화장품은 소재, 제형과 포장, 업스트림, 다운스트림에서의 폐기문제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도 직접적인 규제가 많지 않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화장품 업계는 고탄소 구조를 개선하고, 미리 규제에 대비 하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세우고 역진적 사고를 통해 폐기물량을 줄이고, 업사이클링 소재나 방법론을 사용하며, 제품사양을 간소화 하는 등 작은 것부터 실행하면서 제품과 서비스에 지속가능성을 점진적으로 녹여내는 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환경 따로 경제 따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전히 대다수의 기업들은 환경이 사업의 핵심 소재가 될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아마도 그동안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주요 방식으로 여겨왔던 단기 성과주의, 이익 우선주의 그리고 자사 우선주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밴앤제리스, 유니레버, 닥터브로너스 등 많은 ESG 선도기업들의 성공사례에서 보듯 이제 환경 및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산업적 가치가 하나로 묶이는 건 세계적인 추세이다. 글로벌 뷰티시장에서 매년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는 “클린뷰티”가 왜 북미, EU 등 해외 주요국에선 “지속가능 뷰티 (Sustainable Beauty)”로 불리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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