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뉴스   >   전체

[CLASSI그널]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연말을 함께 하고픈 영화, 그리고 음악, 히사이시 조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입력시간 : 2020-12-11 13:22       최종수정: 2020-12-11 13:26
  • 트위터
  • 페이스북
확대 축소 프린트 메일보내기 스크랩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곡이 정말 좋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 (히사이시 조)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사이시 조라는 이름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히사이시 조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이웃집 토토로’(1988),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등 많은 작품을 함께 했던 음악가다. 그러나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그가 한 때는 미니멀리즘 음악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히사이시 조.png

작품의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만큼 멜로디가 강한 곡들을 썼지만, 스무 살의 히사이시 조는 존 케이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클래식과는 부러 거리를 두었다. 전위음악에서 마음이 떠난 것은 서른 즈음이었다. 그는 청중들의 즐거움 보다 논리를 앞세우는 현대음악에 염증을 느꼈고, 팝의 필드로 들어가 앨범까지 낸다. 이후, 그를 본격적으로 대중들과 만나게 해준 사람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다. 우연히 참여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는 쭉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을 맡아왔다. 

처음에는 당시 그가 선호하던 신디사이저를 썼지만 조금씩 클래식 악기를 사용하다가 ‘모노노케 히메’부터 풀 오케스트라를 쓰게 되었다. 그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작곡가들이 영혼과 육신을 바쳐 만들어온 교향곡들에 오케스트라의 비밀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대학 시절 클래식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오로지 작곡에 도움을 받고자 시작한 지휘는 이제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음악 활동이다. 6년 만에 선택한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와타나베 아유무, 2019)에서 다시 미니멀리즘 음악의 정수를 추구한 그는 고전과 동시대의 음악이 어우러진 연주회로 전세계 팬들을 만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했기 때문일까. 마법과 로맨스가 직조된 판타지이기 때문일까. 메인테마의 웅장하고도 신비스러운 느낌 때문일까. 마녀의 저주로 인해 할머니가 된 소녀 ‘소피’와 마법사 ‘하울’이 등장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연말에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꼽힌다. 저 유명한 테마곡, ‘인생의 회전목마’는 소피와 하울이 처음 만나 팔짱을 끼고 걷다가 하늘 위로 날아오를 때부터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극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다양한 편곡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 곡이 소피의 두 얼굴처럼 얼마나 상반된 매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조용히 보내게 된 연말, 히사이시 조의 역작과 함께 하는 건 어떨까. 

윤성은의 Pick 무비

달아나! 가장 믿었던 것으로부터, ‘런’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런.png
2018년 가을, 미국 신인감독의 저예산영화가 국내 극장가에서 호응을 얻으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서치’(아니쉬 차칸티, 2017)는 영화 내내 인물들이 카메라 앞에 바로 등장하지 않고,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디지털 디바이스나 과거 촬영되었던 동영상 안에서만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 작품이다. 또한, 아버지가 실종된 딸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과정의 긴장감은 웰 메이드 추리극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런’은 이처럼 데뷔작 한 편으로 전 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아니쉬 차칸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뒤틀린 모녀 관계를 그린 스릴러다. 이 영화에는 엄마에게서 벗어나야만 하는 장애인 소녀가 등장한다. 전작에서 딸이 사라진 후에야 그녀의 외로움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아버지의 부성애가 감동을 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지만,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감독은 주인공이 제한된 환경과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그 밖의 감정들은 최대한 배제시킴으로써 장르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태어날 때부터 다양한 병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외출도 불가능한 그녀는 집 안에 고립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클로이의 유일한 희망은 대학에 진학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합격 통지서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어느 날, 클로이는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의 쇼핑백에서 이상한 알약을 발견한다. 인터넷은 끊겨 있고 몰래 전화 한 통 하기가 어려운 상황, 클로이는 알약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라푼젤의 탑과도 같은 2층 방 안에 감금되는 것뿐이다. 여기서부터 하체 마비에 당뇨, 천식까지 있는 클로이의 눈물겨운 생존기가 시작된다. 딸을 향한 엄마의 집착에서는 ‘미져리’(로브 라이너, 1990)의 스토커, ‘애니’(케시 베이츠)가 보이고,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클로이는 외딴 컨테이너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룸’(레니 에이브러햄슨, 2015)의 모녀와 겹쳐진다. 키에라 앨런과 사라 폴슨의 호연이 극의 요소요소에서 빛을 발한다. 

여느 스릴러와 마찬가지로, ‘런’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고, 내가 가장 필요로 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일상이 파괴되고 계획이란 것이 무의미해진 지도 오래, 사회 기저의 공포심을 적절히 건드리는 작품이다. 

사본 -윤성은.jpg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뷰티누리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확대 축소 프린트 메일보내기 스크랩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홈으로   |   이전페이지   |   맨위로
  • 인터뷰
  • 사람들
  • 자료실